필피핀 땅을 다녀와서...
약 7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 하지만 약 2000여개의 섬만이
거주지로 이용되고 있는 대한민국 땅의 3배정도 되는 비교적 넓은 땅 Philippine
이제 그 곳에서의 모든 일정들을 마치고 지금 이글을 쓰게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크고 작은 일들가운데 하나님의 손길들을 명확히 느낄수 있었던 여행이었습니다.
제 기도편지 앞부분에 적었던 말씀"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컫어 무너진 데를 보수할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것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이사야58:12)"처럼 이번 선교여행은 이미 선교사님들이 씨를 뿌려놓았던 땅에서 추수하는 것을 돕고 또 제 마음가운데 오래
동안 이기심으로 황폐되어왔던 마음을 다시 하나님의 선한 것들로 세울 수 있었던 여행이었습니다.
내적으로는 마치 한 길을 제외하고 나머지 길은 절벽인 여러갈래의 일생길에서 온전한 길의 선택을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여 결정을 할 수 있게되는 더 큰 믿음의 확신을 얻는 계기가 되었고 외적으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선교의 세계관을 갖고 세계를 품을 수 있는 마음을 얻게되는 여행이었습니다.
그 곳에서의 일정 가운데 느낀 것이 너무 많고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이땅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 더욱 감사하는 마음까지 갖게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동력자님들의 기도와 후원의 결과라 하겠고 또한 신실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것을 전 확신합니다.
지금부터 필리핀에서의 저의 일정들과 그 곳 상황들을 동력자님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비록 좁은 제 시각으로 바라본 필리핀이지만 동력자님께선 제가 본 필리핀의 시각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초점을 맞추어 보시길 바랍니다.
(작성자; 제 일기를 바탕으로 적었습니다. )
2월1일- 지금 시간은 8시 50분 , 10시까지 필리핀 단기선교여행 참가자는 시민회관에 모두모이기로 했다. 총 26명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숫자는 아니다. 관광버스를 타고 오후 4시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너무나 추운 날씨여서 밖같 공기에 얼굴을 내놓기 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8시 비행기여서 4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난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기로 했다. 우선 김포공항 내부를 돌아다니며 많은 것들을 구경했다. 비록 한국의 공항이지만 여러 외국인들의 방문이 잦은 곳이라서 문화적으로 다양한 것들을 볼 수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때문이었다. 거기에 만족하지않고 국내선 공항까지갔다. 김포 국제선 공항과 국내선 공항까지는 약 200여미터 떨어져있다. 밖같 날씨가 너무추워서 먼발치에서 국내선 공항을 바라만 보고 공항안까지 들어가지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가지고가야할 짐들이 너무나 많아서 우리일행은 화물칸에 넣을 짐들을 맡기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그러면서 시간은 오후 8시로 향했다. 한국시간이었다.
통로를 통해 비행기내로 들어갔다. 도중 여러 가지 절차가 있었다. Philippine Airline이라고 적인 옷을 입은 황갈색 피부의 젊은 스튜어디스가 우리들에게 "마부아이"라고 말하면서 자상하게 기내 탑승을 환영했다.
내 좌석은 38D였다.
8시 35분 , 탑승 후 30여분동안 꼼짝않던 비행기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륙후 20여초만에 1000m 상공에 진입했고 4분후에는 3290m(약10000feet)까지 올라갔다. 계속해서 비행기는 비스듬한 방향으로 더 높은 고도를 향해 날아갔고 최고 9100m(약 31000feet)정도까지 올라갔다.
9시 15분 기내에서 식사가나왔다. beef 요리 와 chicken요리가 있었는데 난 chicken 요리와 펩시콜라를 택했다. 닭고기의 소스가 너무 입맛에 맞지않았지만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후식으로는 오징어 다리와 홍차가 나왔다. 달콤한 케익과 함께.......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후식으로 나온 오징어 다리는 "만고"라고 부르는 필리핀 과일을 말린 것이었다. 이것은 내 입맛에 맞았다.
지금 기내에는 미녀삼총사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그러나 내 좌석 오디오의 고장으로 소리를 들을 수없어서 재미없었다. 그때 시각은 10시20분(PM) , [주소 삭제]시20분(PM)이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까지는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로 약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는 필리핀의 정치 , 경제 , 문화의 중심지로서 필리핀을 대표할 만한 곳이라고 한다.
필리핀 마닐라까지 얼마남겨놓고 있지않은 11시15분 , 기내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잠을 자거나 영어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도 영어공부를 했다. 그곳에서의 몇 마디를 위해서.....
착륙이 얼마남지않아서인지 지금 현 고도보다 조금씩 낮아진다는 느낌이 든다. 기류의 영향으로 기체가 조금 흔들린다. 약간의 두통이 있었지만 견딜만하다.
이제 몇분후면 착륙한다. 비행기내 일행중 몇몇은 심각하게 뭔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대기속도는 866Km/h, 내 정면 약 7m정도 떨어져있는 스크린에 계속해서 고도와 시간 대기속도등의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지금 몇가지 영어표현을 익혀보았지만 잘 외워지지않는다. 평소에 지속적으로 외웠던 표현들은 잊지않고 기억난다. 그 것을 바탕으로 현지인들과의 대화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끌어가야 하는데....
착륙 직전 지금 안내원의 말에 따르면 이곳 현재 온도는 29C라고 한다. 예정보다 15분 일찍 도착했다. 기내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있고 그 와중 비행기가 하강하는 느낌이 들었다.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2월2일- 공항을 빠져나와 우리일행은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일로일로라는 지역으로 가기위해 지프니(우리나라의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와 비슷하고 크기는 버스의 5분의 1정도 되며 약 15명정도의 사람이 타면 알맞다.)를 타고 필리핀 국내선 공항으로 향했다. 새벽 5시(필리핀 시간) 비행기이기 때문에 우리일행은 밤을 새며 기다려야 했다. 두분의 필리핀 사역 지체들과 인사하고 무더운 날씨가운데 무거운 짐들을 옮기며 밤샐 곳을 찾았다. 국내선 공항으로 가기전 우리 일행은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대기실에서 잠시눈을 붙였는데 난 잠이오지않고 지루한 나머지 기타를 연주하며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심신이 많이 지친가운데 찬양은 어느정도 통제력을 잃었고 많은 필리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그 필리핀 사람들이 이상한 듯 계속 쳐다보는 것 같았고 긴 장총을 든 검은 옷에 검은 피부를 가진 40정도 돼보이는 남자가 계속 날 주시하는 것이었다. 그때 난 그 총이 두렵기는 했지만 그들이 날 경계한다기보다는 왠 타지사람이 기타를 들고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신기해서 쳐다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들을 낯설게 느낀느 것처럼 그들 또한 날 그렇게 바라볼 것이다. 지금 생각할 때 어쩌면 그들은 그들의 표정과 달리 속 마음은 따뜻하고 날 (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주고 싶어하지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 마음의 편견이 그들에 대한 내 시각을 부정적으로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4시간 가량 흐른 후 우리일행은 필리핀 국내선 대기실로 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비행기를 타기까지 한 시간 가량 기다린다. 지금까지 뭐가뭔지 잘 모르겠다. 출발전 기대와는 달리 필리핀의 바쁜 사람들의 살벌한 모습들이 느껴진다. 모두 착한 것 같았지만 이해하기어려운 부분들도 있었던 것 같다. 공항 화장실에 갔을 때 일이다. 화장실에 갔을 때 항상 한 두명의 도우미가 있는데 그들은 매우 친절하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나면 미리준비해둔 손닦을 티슈를 준다. 그러면서 그들은 나를 계속 쳐다보면서 뭔가를 계속 바라는 눈치였다. 이들은 우리들에게 팁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10페소(약 300원정도)의 팁을 주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지금 내 수중엔 한국돈 몇 천원이 전부다 . 이곳 돈이 하나도 없다. 줄 수없어 안타까웠지만 공장이 없어서 일하지 못하고 이렇게 팁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필리핀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필리핀에서 본 현지 사람들의 인상은 거무스름한 얼굴에 눈이 큰 (대체로) 그리고 작은 키의 왠지 모두가 도둑처럼 보이는 인상이다. 내가 그들을 그렇게 바라보는 가운데 그들도 흰 피부를 가진 날 약간은 경계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대체로 지금까지 내가 본 필리핀 사람들은 잘 웃지않는다. 무거운 luggage를 옮기는 중 마닐라 국내선에서 본 어느 아주머니(필리핀인)을 제외하고 여유있는 미소를 짓는 필리피노(필리핀 현지인들을 필리피노라고 부른다.)는 없었던 것 같다.
카톨릭이 80%이상인 국가에 이들 국민들의 얼굴에 미소가 없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인 것 같다.
간사님께서 2월2일 오후까지 쉬고 2000여명이 모여있는 학교에서 우리가 공연과 각종event를 펼친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기대된다. 2000여명이라..... 그 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난 벌써 2000명이라는 수에 긴장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난 이제부터 필리핀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그들의 의식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봐야 겠다.
국내선 공항에서 1시간 가량 기다리던 중 난 지루함을 달래기위해 vibes center for good health라고 적힌 아주 작은 안마소를 발견하고는 그곳을 기웃거렸다. 안마를 받기위해서가 아니라 필리핀사람과의 몇마디 대화를 통해서 필리핀에 대해 좀 알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 안마소 사장처럼 보이는 그의 이름은 Edger아저씨였다. 47살의 나이였다. 그 안마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맹인들처럼 보였다. 아저씨의 말론 이들 맹인은 협회단위로 구성된 60여명 정도 되는데 5명씩 매일 교대로 안마를 한다고한다. 100~ 200PISO(필리핀 화폐단위 , 1페소=약 30원)를 받고 30, 40분동안 안마를 한다. 그에게 필리핀에 대해서 묻자 그는 자상하게 내게 필리핀에서 자신의 신상을 설명해주었다. 이름에서 가족관계 , 가족의 고향까지..... 아저씨의 아들은 2명인데 그 중 한 명이 18살이라고 했다. 아버지 고향은 Dumaguete이고 어머니 고향은 Leyte라고 했다. 그는 내게 주소를 가르쳐 주었고 나또한 주소를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는 처음 내게 손님으로 접근했지만 내가 안마받을 맘이 없음을 알고 내가 묻는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 주셨다. 예기도중 Missionary, sponsor라는 단어라 들렸는데 내가 짐작하기로 아마도 선교여행으로 오는 한국관광객들이 많은 모양이다. 아저씨는 예기의 화제를 바꾸면서 한국경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얘기가운데 필리피노인 Edger아저씨는 한국의 경제 성장을 몹시부러워하고 있음을 느낄 수있었다. 비단 그 아저씨뿐만아니라 대부분의 필리핀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필리핀에서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알 수있었다. 한국에 일자리가 많냐고 물으시면서 필리핀에는 일자리가 아예없다고 말씀하셨다. 아무생각없이 난 비록 한국경제가 어렵지만 자랑스럽게 한국엔 일자리가 아주 많다고 했다. 그리고 시내에 나가면 필리핀 노동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말을 끝마치고 난 그 아저씨의 표정을 살폈다. 순간적으로 난 한국을 자랑한 애국자가되었지만 필리피노인 그 아저씨는 내 가 한 말로인해 마음의 상처가 되지않았을까 염려되었다. 그리고 너무나 미안해서 나는 한마디 더 붙였다. "일자리는 많지만 대부분이 3D 업종이라고 말했고 한국도 많은 실업난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 이 말과 함께 아저씨의 눈빛은 약간 빛나는 듯했고 나도 안심이 되었다.
그의 첫인상은 굉장히 무서워보였지만 얘기하면서 너무 순수하고 자상한 분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내가 가졌던 편견이 무너졌다.
얘기도중에 그는 필리핀 사람들이 한국의 김대중대통령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왠지 이해가 되지않는다. 내가 잘못들은 것일까?
아무튼 그 아저씨와 같이 주소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비행기 시간이 다되어서...
지금 필리핀시간으로 오전5시15분 난 비행기에서 이글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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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시간 새벽6시(필리핀시간) 아직 비행기안이다.
비행기안에서 필리핀 자연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비행기는 구름위에 떠있는데 방금전 태양이 구름위로 떠오르는 멋진 장면을 봤고 구름위의 또다른 세상도 봤다. 먹구름옆을 지나치면서, 땅에서 바라볼 때 시커면 구름들을, 가까이서 바라보았는데마치 소용돌이치는 듯이 엄청난 크기로 공중에 떠있는 구름들이 너무나 장관이었다. 구름을 이루는 물방울들이 어떻게 뭉쳐있나를 자세히 보기위해 약 15인치 정도되는 비행기 유리문에서 눈을 떼지않고 바라보았고 소용돌이모양의 구름을 더자세히 보기위해 이 비행기가 그 먹구름을 뚫고 지나가길바라는 기도도 했다.
정말 비행기를타고 마닐라에서 일로일로로가는 중 내가 본 광경을 사진으로 담아두지못한 것이 지금 너무나 후회스럽고 안타까운 일인 것같다.
지금 필리핀시간으로 오전 9시 우리일행은 sanmiguel 교회에 도착했고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쳤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잠을자지못했기 때문에 일행들모두는 오후 점심시간전까지 휴식시간을 가졌다. 그 곳 일로일로 지역사람들은 매우 인정스럽고 따뜻한 것 같다. 처음 필리핀사람에 대한 내 모든 편견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곳도 세상사는 곳이고 하나님이 통치한는 곳이다. 얼마동안 같이 있지는 않았지만 필리핀사람들이 게으르다는 내생각이 사실이 아니라는 생각이든다. 음식또한 예상밖으로 맛있었다. 간단한 샤워(약3분)을 끝내고 내 이층침대위로 올라왔다. 그곳의 물은 석회성분이 많아서 그대로 먹을 수 없다. 특별한 정수기로 거르거나 돈을 주고 생수를 사먹어야한다. 샤워를 하는 데 비누가 물에 잘 풀리지않아 무척 힘이들었다.
지프니를 타고 공항에서 이곳 교회로 오는데 약30분가량걸렸다. 거의 곧은 직선으로 30분가량 달렸다. 거리의 풍경은 마치 내가 지프니를 타고 정글을 달리는 기분이었고 그 시대를 살지않았지만 60,70년대 한국의 시골풍경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막 선교여행팀의 나의 조장으로부터 1100PISO(페소: 필리핀에서 통용되는 화폐단위 로써 1페소는 원화30원 정도의 가치를 갖는다.) 를 받았다. 그런데 이 1100PISO가 얼마만큼의 가치를 갖는지 어느정도되는지 모르겠다. 이런부분에서도 환경의 차이가 얼마나 인간을 어렵게 하는지 보여주는 것같다. 재정, 음식, 심지어는 물도 함부로 사용할수없어서 겪는 괴로움은 분명 문화충격이다. 기존의 관습에 지배받고 있던 나자신이 다른 문화관습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마치 나 자신의 옛습관을 새롭게 바꾸는것처럼 힘든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든다.
방금전 난 내 의지와 상관없이 time keeper가 되었다. 하지만 단기선교여행이라는 짧은 시간가운데 시간활용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의미에서 누구보다도 시간일정을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계획할 수 있는 TK는 이번 프로그램에 내가 더 잘 집중할 수 있는 좋은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피곤하다. 이제 눈을 좀 붙여야겠다.
11시 50분에 기상해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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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2시 아직까지 2월2일이다. 오늘 하루는 굉장히 길었다는 느낌이 든다.
날씨적응이 내게 그리큰 어려움은 아니었지만 좀 힘들게했다. 점심식사후 우리일행은 옷을 갈아입은후 교회옆의 sanmiguel national Highschool로 향했다. stage에서 첫 공연......
수백명의 학생들은 유리없는 창문의 창틀을 통해서 우리를 환영했고 유명한 연예인들이 온것처럼 반기는 것이었다. 로맨worship을 시작으로 계획된 program이 진행되었다. calling시간 어느 한 목사님께서 stage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일롱고)와 영어를 섞어가면서 무슨 말씀을 하셨다. 잠시후 아이들은 일제히 나아와서 그 목사님이 하시는 말(영접기도)을 따라했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공연중 재미있었던 것은 그곳 학생들이 피부색이 다른, 그리고 공연한 우리가 무슨 유명한 배우나되는 것처럼 이름과 주소를 써달라고 종이를 내미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가 써 준 사람만 순식간에 무려 50여명이 넘었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햇빛에 노출되어있는 그 순간이 내겐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공연후 일행은 돌아와서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그때 한 친구를 만났다. 나이는 22살, 이름은 eric, 경찰학교를 다니는 얘였다. 나와 통하는 부분이 많았고 난 그로부터 선물도 받았다. email 주소를 교환하면서 유창하진않지만 난 계속 그와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너무즐거웠다. 그의 부모님은 카톨릭 신자라고 한다. 그도 카톨릭이었는데 개종했다고 한다. 그는 필리핀사람이 단지 온순하고 열정이 없을 것이라는 내 편견을 버리게 만들었다. 그는 열정이있었다. 난 그와 함께 전도, 선교, 그리고 성경, 믿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얘기가 잘통했다. 우린 둘만의 독특한 악수법을 통해 더욱더 친밀감을 가졌고 만난지 30여분만에 그는 필리핀에서 나의 best friend가 되었다. 필리핀에 대해서 설명해달라는 말에 잘 설명해주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 4계절이 뚜렷하다는 사실에 대해 잘모르는듯했다.
그곳에서 난 불편함을 느끼던 동시에 우리한국이 정말 잘 살구나하는 생각과 한국인을 부러워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에 자부심까지 느꼈다.
정말 한국같이 잘 사는 나라도 없는 것 같다. 식사시간 많은 음식이 나왔지만 솔직히 내 입맛에 맞는 것이 몇 안되었다. 하지만 난 맛있게 먹기로 했다. 단지 음식 때문에 내가 선교여행에서의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 너무 터무니없는 것 같아서 이다. 그리고 솔직히 그곳 음식은 먹을만했고 정성들여 만든 필리핀 주민들의 맘을 무시하고 싶지않았다.
저녁7시쯤 서태원선교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우리 단기선교팀은 그 시간 필리핀에대해 좀더 잘알게되었고 그곳 필리핀에서 어떻게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잘 알게되었다.
설교후 우리팀은 reflection시간을 가졌고 이렇게 길고길었던 2월2일 일로일로에서의 첫 날밤을 지새우고 있다.
2월3일 - 아침6시에 기상했다. 7시에 아침식사를 한다음 8시쯤 우리일행은 이곳 필리핀지역 교회를 방문했다. 찾아간 지역은 Lion지역이었는데 처음으로간곳은 Christian Gaspel baptist church로서 담임 목사님은 콘스탄틴 목사님이셨다. 그곳에서 목사님 딸과 친구의 특송을 들었는데 "예수그리스도만이 오직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람들의 필요를 채울 수있다" 는 내용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찬양이었다. 그곳에서 특이한 과일을 받았는데 이름은 "쟤밍고"였다. 모양은 우리나라의 모과와 비슷하게생겼다.
오후 10시쯤 안디옥교회에갔다. 이곳에선 유치원생들을 교육하고 초등학교로 보내는데 이곳 출신의 학생들이 공부를 잘한다고 한다. 바로이어서 간 교회는 "Praise center church (Anniversary)였다. 이곳에서 우리일행은 교회설명과 축복의 기도를 올린후 또 다른 교회를 가기위해 나왔다.
11시20분쯤 우리일행은 지금 짓고있는 교회인 갈름방교회에 갔다. 여기서도 헌금과 교회를 위한 기도를 하고 나왔다.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일행은 다시 sanmiguel church로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3시쯤 CALANSANAN CHRISTIAN CHURCH에 갔다. 지프니를 타고 산 중턱쯤 올라왔을 때 한 작은 교회가 보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갑자기 준비한 특송과 월쉽을 했고 그곳 교인들과 잠시 시간을 보내었다. 너무 더웠고 목이마르던 중 처음으로 그곳에서 야자수를 먹게되었다. 빨대를 꽂아서 야자수 한 덩어리당 서너명씩 같이 먹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남을 지경이었다. 생각보다 그리 맛이있진않았다. 크기는 배구공보다 조금 작았는데 그 속엔 약 1.5리터의 과액이 들어있었다. 거의 버릴 것이 없는 과일이라는 생각이든다. 다 먹고 난 다음엔 그 과일 속 껍질에 하얀 겔상태의 달콤한 고체성분이 묻어있는데 아마도 이것은 오랜시간걸쳐 형성된 과액의 결정성분인것같다. 이 고체성분은 말려서 가루로 만든다음 떡과 함께 설탕처럼 뿌려먹기도한다. 이곳에 있으면서 느낀 것은 이들이 스포츠 특히-축구- 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야자수 껍질은 이들에게 축구공으로 유용하게 쓰인다. 보통 교회마다 축구공이나 배구공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미개한 지역엔 이것이 유용한 축구공으로 쓰이지않을까하는 추측을 해본다.
오후 3시40분쯤 일행은 디볼로교회에갔다. 그곳의 목회자는 우리들에게 두가지기도제목을 냈는데 첫째는 로마카톨릭교인의 전도가어려워서 이들을 잘 전도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야간에 전기가 들어오지않아서 저녁예배를 할 수없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어려운 처지였다. 전기를 끌어놓으려면 약 15000페소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곳 일반 노동자의 한달 월급이 180페소정도된다고 하고 또 비행기 승무원의 경우 월급은 3,4천페소정도된다고 한다. 월급차이가 엄청나게 나고 그 곳에서 15000페소는 굉장히 큰돈인 것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준비한 월쉽을 했고 그곳 교인들과 하나될 수 있었다.
오후 4시30분쯤 우리는 SM(shopping market)으로 갔다. 이곳은 우리나라로 치면 백화점이다. 이곳에 들어섰을 때 난 지금까지 필리핀에서 본 가장 큰규모의 건축물이라는 데에 놀랐었다. 안에는 다양한 것들이 많이있었다. 비록 다 들여다 보지는 못했지만 느낄 순있었다. 백화점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부터 차량의 종류가 확연히 차이가났다. 지프니를 타고 다녔던 일행은 그곳에서 거의 처음으로 승용차를 봤다.
내가 봤을 때 필리핀은 아직까지 1차 산업(농업)에서 크게 벗어나지못한 것 같다. 사람들이 관계중심적이어서 서비스 산업이 발전할 수 있을것같았다. 실제로 서비스부분은 이곳 필리핀에서 가장 잘 발달되어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서비스 실태를 바라봤을 때 아직 우리나라는 이러한 부분이 미약하다는 생각이든다.
필리핀 주위를 둘러보면 산은 아예보이지않는데 이처럼 공장또한 찾아보기어려웠다. 단지 드넓은 농토와 평야가 깔려있을 뿐이었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한국과 이곳이 많이 비교되었고 한국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자랑인가?하는 생각이 수십번 들었다.
저녁 reflection 시간에 우리조는 이틀동안 이곳에서 느낀 점들을 나누었다. 여러교회를 다니면서 그리고 SM이라는 백화점에 가서 ... 각자 느낀점들을 나누었고 하루를 마감했다.
2월4일- 오늘은 필리핀에서 처음으로 맞는 주일날이다.
Sanmiguel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순서나 일정은 한국교회와 비슷했다. 말씀은 시편 23장1절에서 6절까지였다.
단기선교팀이 왔다고 해서 그곳에서 특송을 준비했는데 그곳 교회 주일학교 어린이들의 특송이었다. 모두들 드레스를 차려입고 나왔는데 너무나 귀여웠다. 곧이어서 청년부쯤되어보이는 사람들이 왠지 귀에익은 찬양을 영어로 하는 것이였다. 그 청년부중 한명이생각난다. 녹색티셔츠를 입은 한 소년이었는데 그의 옷엔 33이라는 숫자가 그려져 있었다. 난 그들의 찬양 보다는 그 소년이 입은 33이라는 숫자가 무슨의미가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혹시 운동선수일까? 그는 좀 거만해 보였는데 특송시간에도 그의 왼 손은 악보지를 들고있었고 오른 손은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넣고 찬양을 했다.
2월4일 필리핀에서의 첫 주일날 날씨는 매우 좋았다. 그곳에 가로수처럼 쭉 심겨져있는 야자수하며, 정겨운 비포장 길, 넓게 확트인 논과 밭, 비록 비쩍 말랐지만 멋있는 울음소리를 내는 소, 냇물을 따라 너무나 예쁘게 떠다니는 어미오리와 새끼오리들, 더워서 웃통을 벗고 우리들을 반기는 필리핀 사람들, 높은 건물이 없어서 멀리까지볼 수 있는 필리핀 자연, 그리고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는 필리핀 닭들...... 정말 너무나 아름다웠다. 우리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12시부터 오후3시까지 휴식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 우리일행은 사진을 찍기위해 이곳 저곳을 다녔다. 이때 델리라는 한 필리핀자매를 알게되었고 그와 좋은 친구가되었다. 그리고 문제의 33번 티셔츠 소년과도 얘기를 나누게되었는데 그의 나이는 8살이었고 이름은 기억이나지않는다. 그가 입은 티셔츠에 대한 비밀도 알게되었는데 그옷에 적힌 33이라는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기대했던 답이 나오지않아 아쉬웠지만 궁금증을 해결할 수있어서 너무나 기뻤다 . 더운 날씨였지만 미풍이 이마를 약간은 시원하게했다. 더워서 무리한 행동은 하기가어려웠고 거리의 개들도 무더운 날씨때문인지 어두워지기전까지 꼼짝도 하지않고 바닥에 주검처럼 누워있었다. 더워서인지 닭들의 울음소리도 한국 닭보다 그 울음소리가 짧았다. 지금와서야 말인데 이 닭울음소리 때문에 난 여러날 잠을 설쳤다. 울다가 왠지 목이 막힌것처럼 끊어지는 그 울음소리는 나의 정상적인 호흡주기를 불안정하게 만들어서 새벽에 몇 번이고 잠에서 깨게 만들었다.
이렇게 우리일행은 3시 전까지 사진을 찍고 오후예배를 위해 지프니를 탔다. 다음 목적지는 일로일로 지역의 센터교회인 G.V.C(great vision church)였다. 이곳에서 저녁예배를 드리기전에 SM (Shopping Market)에 갔었는데 그곳에서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고 처음 SM에 왔었을 때 가보지못한 곳을 둘러보았다. 같이 동행한 한 자매 간사님과 신발,의류코너에 갔는데 그곳에서 물건 가격은 한국에 비해 대체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4시30분 드디어 G.V.C에 도착했고 오후예배가 시작되었는데 Sanmiguel church에서 만난
Ivy Camino와 Jade Alcantara,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않는 한 형제가 찬양싱어로써 아름다운 찬양을 하고 있었고 그곳 필리핀선교사님이신 서태원,김미화부부의 따님이 찬양, 기도인도를 하고있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찬양과 기도가 너무나 뜨거웠고 그곳 찬양시스템이 지금까지 필리핀에서 본 가장 최신식이었기 때문이다. 그곳 예배당은 서서 예배드리는 사람까지 합쳐서 약 15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넓이로써 50평쯤 되어 보였고 2층으로 된 건물이었다.
우리 팀이 준비한 공연을 한 다음 서태원 선교사님의 말씀이 이어졌는데 말씀은 마태복음28장18절에서 20절이었다. 전도에 대한 주제로 말씀을 전하시면서 예수님의 권세주심과 제자양육 그리고 세례에 대한 말씀을 전하셨다. 그리고 기도제목으로 대학생전도와 GVC에서 앞으로 선교사를 파송 하는 것 등을 내셨다. 이렇게 우리일행은 예배 후 다시 Sanmiguel 교회로 돌아왔고 이렇게 필리핀에서 첫 주일을 마감했다.
2월5일- 오늘도 마찬가지로 난 Time Keeper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맨먼저 일어나서 난 모든 맴버들을 깨운 다음 다음 Program진행을 위한 일정을 기록했다.
사실 난 time keeper라는 직책이 날 일찍 일어나게 하는 동기가 되기도 했지만 그곳 교회 목사님과 교인들이 아침 일찍부터 찬양을 하시는데 그들이 부르는 찬양을 더 잘 감상하고 싶어서 더 열심히 일찍 일어났던 것 같다. 그들의 새벽에 부르는 찬양은 솔직히 내 정서에 잘 맞았던 것 같은데 장르로 치면 거의 알앤비에 속했던 것 같다. 한국에선 잘 들을 수 없는 이 필리핀의 찬양가운데 그들의 정서를 잘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맑은 목소리는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마음 같았고 왠지 내가 빨려들 것만 같은 그들의 눈빛은 내 영혼이 그들의 찬양에 빨려들어 같이 하나님께 찬양드려지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도록 만들었다.
아침식사후 우리일행은 한 20명정도 타면 딱 맞을 지프니에 30명이상이 위 아래로 타고 오늘 가야할 곳들을 다녔다. 더운 날씨인데 멤버들은 좁은 지프니에 몸과몸을 밀착해서 타고있었고 시속 약100Km로 달리면서 창문없는 지프니 내부로 들어오는 강한 바람에 의해 내 머리카락은 거의 제멋대로 였다. 손수건을 빌려서 머리에 동여매고 난 잠시나마 머리가 휘날리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10시30분 우리는 다음 교회로 가기전에 예정에 없던 곳을 방문했다. Antique tribe가 살고있는 곳이었는데 거의 모든 아이들이 미개의 삶을 살고있었다. 그곳에선 많은 언청이들이 있었고 벌거벋고있었으며 그들은 교육을 받지못하는 삶을 살고있었다. 너무나 가슴이아팠다. 이들은 필리핀의 원주민들인데 국가적으로 이들의 인권을 많이 유린하고있다고 들었다. 너무나 불쌍한 자들이었다. 처음 이들을 봤을 때 너무나 밝게 지내고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엔 왠 낯선사람들에 대한 경계심보단 호기심이, 그리고 미소가 있었던 것 같다. 이 미소가 이들에 대한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했던 것같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내 환경과 상황을 두고 많이 괴로워했고 힘들어했던 적이 많은데 이 모든 것들이 이 부족을 보면서 부끄러웠다. 이것은 비단 이들 부족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만은 아니였다. 이곳의 많은 목회자들과 선교사님들은 하루 1끼정도의 식사를 하시면서 열심히 사역을 하고 계신다. 이곳에서 태어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하나님나라확장을 위해 선교의 비젼을 가지고있는 것을 보면서 이들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태어난 내가 너무나 개인적이고 나자신의 안위를 위한 비전들을만 세웠던 것이 정말 부끄러웠다.
아픈 마음과 동시에 도전적인 마음을 갖고 난 일행과 함께 파나안교회(Dao Mission Center Bible Church)에 갔다. 그곳 교회는 계속해서 공사중이고 아티족의 전도를 위한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구상중이었다. 그곳에서 7명의 리더와 1명의 디렉터를 만났고 이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해서 이루어가실 일들을 상상해보았다. 필리핀의 여러교회를 보면서 느낀 것은 교회가 국가의 복지 , 교육등 정부가 책임져야할 부분까지 담당하고있는 것을 보면서 한국교회는 과연 어느정도 이러한 일들을 주도적으로하고있는 가였다. 이에대한 국가의 지원이나 협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들은 한사람 한사람의 영혼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간 교회는 사회복지, 교육등에 큰 계획을 가지고있는 교회였고 아티족을 위한 High school 건축계획도 있다고한다. 이미 많은 부지를 확보했고 계획들이 많이 진전되고있었다. 중앙교회와 주위 21개의 교회를 세우고 또 지도자를 세워 보다 전략적인 복음화 전도계획들을 우리들에게 설명하면서 많은 후원과 기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와 같이 간 태영선교회 최병태 장로님께서 말씀을 전하셨고 이후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시간 굉장히 독특한 음식이 많이 나왔다. 바닛, 마나마나 라는 생선과 구운 바나나 그리고 수박비슷하게생긴 구야바 , 굉장히 단 커피등등 이 지역 사람들의 음식문화를 한눈에 볼 수있었다.
점심식사후 우리는 다시 지프니를 타고 3시25분 "Antique National High School"에 도착했다. 이 학교의 전체적인 규모나 이들이 입은 교복색깔 등으로 미루어봤을 때 첫날 갔던 Sanmiguel National High School보다 훨씬 부유해 보이는 학교인 것 같다. 이날 우리는 준비한 월쉽과 드라마를 했고 첫날 학교처럼 많은 학생들이 영접을 했다. 너무나 기뻤고 난 초대교회 때에 베드로의 연설로 수천명의 사람들이 주님앞으로 나아온 그 광경을 목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말씀을 연구하면서 평소에 들었던 의문은 과연 한 번의 설교로 수천명이 주님에게로 나아올 수있었을까?라는 것이였다. 하지만 이러한 의문은 저번과 이번 영접한 학생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학생들과 서로의 이름을 주고받으면서 친해졌고 친구가되었다.
이어서 우리일행은 이곳에서 약15분떨어진 곳에있는 교회에갔다. Shekinab Christian Church였는데 이 교회는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있는 교회였다. 교회는 있지만 땅이 이교회 소유가 아니어서 자칫 쫒겨날 수도있다는 말을들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이 교회는 약300만원정도의 재정이 필요하다고하는데 그곳에있는 아이들과 환경들을 바라보면서 꼭 도와 주고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2월6일 - 오늘 오전에 처음으로 필리핀에 있는 대학교에갔다. 그 대학이름은 Western Bisayas University였는데 처음으로가는 외국대학이었기에 굉장히 설레인다.
그리 크지않는 대학인데 눈에 띄었던 것은 이 곳 대학생들이 교복을 입고다닌다는 것이고 학과마다 교복색깔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들은 흰색의 교복 입는 것을 좋아하는데 흰색의 교복입은 것에 굉장한 프라이드를 갖는 것처럼보였다. 실제로 상하흰색교복은 간호대나 의과대학생이라고한다. 필리핀에선 치의예과가 가장인기있는 학과라고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노방전도를 하게되는데 2명씩 조를짜서 전도를 하러갔다. 주어진 시간은 1시간30분정도였고 그야말로 영어로 전도를 해야한다. 난 내 짝과 몇 분간 준비를 하고 여러 학생들이 모여있는 곳으로갔다. 처음 인사하는 것까진 좋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내 짝과 나는 좀 서툴지만 열심히 복음얘기를 하기위해 노력했고 역시 잘 되지않았다. 실제로 복음에대해서는 말하지도못하고 그냥 불필요한 얘기만 많이했던 것 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실패하게된 원인을 분석하고 20여분 남겨둔채 각자 전도하기로 했다. 최소한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중복되는 질문들을 막자는 것 이였다. 난 Time Keeper로서 얼마남지않은 시간을 의식하며 전도대상자를 찾아다녔고 드디어 한 사람을 발견했다. 조용히 돌의자에 않아서 그와 난 복음의 깊은 곳까지 얘기가 들어갔고 급기야 그는 내게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믿을 수 있죠?" 이 말을 듣자마자 난 가슴이 뭉클해졌다. 난 하나님을 영접하면 된다고 말하고 영접기도를 시작했다. 한마디 한마디 그는 잘 따라했고 "아멘"으로 끝을 마쳤다. 그녀의 이름은 JOJI E. BASBANO였다. 그녀는 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고 처음부터 날 많이 배려해주었다. 소망하기를 그녀가 앞으로 분별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길바라고 점점더 자라나길 바란다.
오후 1시30분 일행은 교도소를 찾아갔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규모가 작았고 자율 스러워 보였다. 그곳에선 죄인들이 죄수복을 입고있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그들이 죄인들답지 않게 우리보다 더 밝은 표정으로 우리를 영접했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 이었다. 범죄자들이라는 생각에 처음엔 다가가기 어려웠지만 모든 공연이 끝나고 그들을 껴안으며 기도할 때 우리는 다 같은 죄인이고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살리셨다는 고백을 하며 그들을 더욱 사랑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영접을 했고 이곳 필리핀 땅에서 하나님께서는 한국 땅에서 볼 수 없는 많은 신기한 역사들을 행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교도소에서 나와서 4시에 교회를 방문했다. 지하교회였는데 그곳에선 많은 유치원어린이들이 모여있었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워 보였는데 이런 아이들이 어두컴컴하고 공기가 나쁜 지하교회에서 교육받는다는 것이 너무 가여워 보였다.
이곳에서 약5만원정도의 재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들 어린이들을 교육하게 위해서 필요한데 더 많은 선교 후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오늘 하루도 마감한다. 오늘은 Sanmiguel 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참 많이 정들었었는데........
2월7일- 오늘 아침 일찍 이곳을 떠난다. Sanmiguel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냈고 아침식사(7시)후 7시30분 우리일행은 기마라스섬으로 간다. 6일씩이나 Sanmiguel교회에서 보내고 그리고 떠나면서 정든 고향을 두고 떠나는 것처럼 아쉬웠다. 그곳의 목사님과도 너무나 친해졌는데 ... 갈 때 목사님께서는 내게와서 교회주소와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주셨고 그분의 눈가가 붉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도 헤어지기가 싫었다. 나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닭들과도 헤어지기가 싫었다. 이제 닭소리도 익숙해 졌는데...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는 이제 능숙한 솜씨로 지프니에 올라타서 기마라스섬으로 향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Gordan national High School이였고 8시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서둘러서 갔다. 그곳 학교는 중간고사 기간이었는데 우리 때문에 시험시간을 늦추었고 그 곳 학생들이 우리의 공연을 관람하도록 했다. 봐도봐도 점점 더 은혜스러워지는 월십과 드라마는 비록 언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그 느낌을 학생들에게 전했었고 많은 학생들이 반응했었다. Calling 시간 많은 긴장가운데 우리일행은 그 전부터 기도로 일관해왔었고 월슨이라는 열정적이고 재치있으신 목사님을 통해서 그 죠단 고등학교의 많은 지체들이 또한 하나님앞으로 나아왔다. 비록 중간고사여서 힘들거란 생각이들었지만 이곳에서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역사하심을 찬양하지않을 수 가없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Beliving Lighthouse Church라는 등대교회에갔다. 기도와 헌금후 나와서 간 교회는 Santa Teresa Church였다. 산위에있는 교회였는데 이 교회역시 재정적으로 무척 힘이 든다고한다. 필리핀에 갔던 모든 교회들의 힘든 부분이 공통적으로 재정부족인 것 같다. 이곳 교회 목회자들은 이러한 재정부족 때문에 평일날에 교인들 모르게 인력거를 끌거나 막노동을 한다고한다. 너무나 힘들게 사역하고계신 모습들이 역력했다.
이날 마지막으로 간 곳은 신학교였다. 이 곳 신학교는 아직 정식으로 인정을 받지못했지만 아시아로 보낼 선교사를 길러내는 큰 비젼을 품은 신학교였다. 여기서도 이들의 어려운 생활은 역력했다. 이곳에선 8명의 교수가 있고 20명정도의 신학대학생이있다고한다. 이들은 너무나가난해서 아침은 커피등으로 때우고 점심 , 저녁도 고구마나 바나나로 때운다고 한다. 이런 생활이 힘들어서 몇 명은 이곳을 나갔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이들을 보면서 엄청난 등록금을 내고 매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먹으면서도 열심히 살지못한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고 그런생 활가운데서도 하나님나라에 대한 대단한 비젼을 품고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내게 큰 도전을 주었다.
오늘 큐티본문은 요한복음11장1절에서 16절이었다.
제목은" 나사로를 살리신예수님"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오늘 아침부터 우리팀의 리더이신 간사님의 배가 아프기시작했다. 신학교에 와서 그 고통은 더해갔는데 이때 우리일행과 선교사님 그리고 그곳 목사님들이 합심해서 안수기도를 했다. 몇 분동안의 기도가운데 놀랍게도 간사님의 복통은 씻은 듯이 나았고 우리는 그 순간 하나님을 찬양하지않을 수 가없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하려함이라 하시더라(요한복음11:4)"
이날 저녁 이곳 주민들과 같이 찬양과 예배를 드렸고 함께 단비를 맞으면서 그리스도의 자녀로써 한 가족임을 더욱 잘 느끼게되었다.
2월8일 - 아침일찍 식사를 하고 우리일행은 쿠샤목사님이계시는 칼리보로 향했다.
건장한 체구 때문인지 그분의 별명은 peter이셨다. 그 곳 교회이름은 Peace of prince church였다. 배를 타고 이곳을 오면서 끝이 보이지않는 바다의 무한함 뿐 아니라 그 무한한 아름다움에 놀람을 금치않을 수 없었다. 도착후 점심식사를 했고 중 범죄자들이 모여있는 교도소에 갔다. 지난번에 갔던 교도소와는 달랐다. 모든 죄수들이 감옥에 갇혀있었고 무더운 날씨와 잘 씻지못해서인지 그 교도소에서 풍겨져나온 훈훈한 공기는 그곳에 그리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을 갖지 못하게 했다. 우리는 시스템을 설치하고 예정된 프로그램대로 시작하려고 하던 중 갑작스런 폭우와 함께 정전이 되어버렸다. 엄청난 폭우였다. 전기가 들어오지 못하면 우리들이 하는 드라마나 월쉽은 그들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가없다. 우리는 일제히 모여 전기가 들어올수 있도록 기도를 했다. 너무나 간절히 .... 잠시후 우려했던 전기문제가 해결되었고 우린 기도 응답이이루어진 흥분감과 하나님에대한 더 큰 신뢰감으로 어느 때보다도 더 은혜스럽게 준비한 공연을 했다. 그들의 표정은 지난번 갔던 교도소 죄인들과는 달랐다. 더 어두워보였고 복음에 잘 반응할 것 같지 않았다. 그들곁에다가가면 준비해둔 칼이나 날카로운 무기로 우리를 헤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조차도 두손을 모으게만드셨고 오랬동안 굳어져왔던 그들의 눈물샘에 은혜의 샘이 넘쳐나게 하셨다. 처음엔 다가가기가 너무나 어려웠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두 손을 모으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가가서 기도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불현득 종류가 다를 뿐이지 나도 그들 못지 않은 죄인이라는 생각에 그들을 더욱 이해하고 싶었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다가왔고 이제그들은 새사람이 되었다.
많은 이적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 필리핀땅에서 ...
"날 구원하신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교도소 방문 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번 필리핀 선교여행가운데 며칠 전부터 내 개인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다. 이 것은 내가 이번 Program에 집중하는 것을 많이 방해했는데 내 스스로 이 문제를 참고 통제해 오기만 했었기 때문에 그 힘든 부분은 더 커져가기만 했다. 너무 갈등이 되어서 난 어느 한 목사님과 상담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목사님 입을 통해서 미리 준비하신 듯 내게 필요한 말씀을 해주셨다. " 그리스도의 머리와 몸 .." 많은 대화가운데 난 회복되고있음을 느꼈다. 이로써 난 더 자신감을 갖고 잘 집중할 수 있었다.
오늘로 이곳 음식이 8일째가 된다. 이상한 것은 이 음식들이 내 입맛에 점점 맞춰지고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니, 내 입맛이 이 음식들에 맞춰지고있다는 느낌이 든다. 정말 감사한 것 같다. 너무나 맛있고 살이 찌는 것 같다.
혹시 , 하나님이 내가 이곳에 남기를...??? ^^
벌써 하루가 가고 점점 집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2월9일- 오늘은 보너스로 보라카이섬에 가게된다.
보라카이섬은 세계적인 휴양지로 알려져 있고 강렬한 태양, 산호의 오랜 침식, 퇴적으로 생긴 하얀 모래, 바닷속까지 들여다 보이는 맑은 바닷물 , 줄줄이 서있는 멋진 야자수나무 정말 보기만해도 바랄나위 없이 흡족한 곳이다.
사실 난 이날 바닷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배에서 내려 하얀 모래를 밟는 순간 난 이미 내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뭔가에 홀린 듯 물에 들어갈 때를 노리고있었다. 이렇게 오전 오후를 보라카이섬에서 보낸 후 점점 해는 지기 시작했고 시장을 본다음 숙소를 찾아갔다. 시장을 볼 때 모든 물건의 가격은 k수로 매겨졌고 단 한 가지는 예외였다. 저녁식사시간에 김미화 선교사님께서 매운탕요리를 하기로 하셨는데 풋고추가 필요하셨다. 이 풋고추는 k수로 가격을 매기지않고 개수로 가격을 매기는 것 이였다. 3개당 2PISO씩 했다. 이곳에선 꽤 비싼 가격이다.
여러 가지 해물들과 양념들을 이용한 매운탕은 지금생각하면 보라카이에서 아니, 필리핀에서의 가장 인상깊은 음식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세계적인 휴양지에서의 하루는 끝나가고 있었다.
2월10일 - 7시쯤 보라카이섬을 떠났다. 그곳에서의 모래와 산호, 그리고 추억을 들고 배를 탔다. 너무 많은 아쉬움이 들고 나중에 다시 한번 오고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배 고동소리만 요란하고 일행들은 모두 지쳤는지 거의 한마디말도 들리지않다. 우리는 다시 쿠샤목사님 교회로가서 짐을 챙겨들고 다음 목적지인 마닐라 파가사교회로 가기위해 일로일로 국내선 공항으로갔다. 비행기이륙시간은 다 되어가는데 오는 도중 지프니가 고장나서 몇분간 정체되기도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또 다시한번 힘을 발휘해 지프니를 움직였고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모두 이런 식이었다.
11시5분 (오전) 비행기는 출발했고 순식간에 공중에 떴다. 활주로 옆에서 한 아이가 손을 흔들고 있다. 땅의 모든 것들과 그 아이의 모습이 점점 작아진다.
지금 밑은 구름과 바다뿐이다.
P.C.L.C(파가사 교회)에 도착했다.
마닐라국내공항에서 지프니를 타고 3,40분 가량왔는데 오면서 도로엔 일로일로와는 달리 수많은 차들이 빽빽하게 밀집되어있었고 공기또한 매연 때문에 많이 오염되어있었다. 숨쉬기가 너무힘들정도였다.
오후 3시 마지막으로 우리는 SM(shopping market)에 갔었다. 마닐라에서 SM은 일로일로에서보다 더욱 컸고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주어진 시간은 약 2시간쯤이었다. 난 멤버 한 명과같이 이곳 저곳을 다녔다. 눈에 띄는 것은 필리핀의 수공업제품들이었는데 이것들은 이 나라의 아름다운 자연을 수놓거나 장식한 물건들이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기념품들을 구경하던 중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같이 다니던 한 맴버의 가방에 두었던 지갑을 도난당한 것이다. 처음갔던 서점에서 엽서를 구입하고 계산을 하기위해 지갑을 꺼내던 중 가방이 열려진 채 지갑이 없어진 것이다. 필리핀에는 도둑이 많다고 한다. 특히 이들 도둑은 목표대상을 정하고 가방에 지갑이 있을 경우 몰래 가방을 열고 지갑을 훔쳐 간다고 한다. 난 그 친구가 걱정되었다. 아직 1시간 가량 시간이 남았고 우린 지갑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 많은 인파가운데 지갑을 찾기란 무리라는 것을 난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그 친구는 당황해 했고 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지갑 속엔 친구의 신분증과 자격증, 학생증, 각종 카드, 그리고 한국돈 5만원정도의 금액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 친구는 이곳 필리핀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많다. 시력이 좋지 않아 그는 안경을 착용하는데 이곳에서 안경알 1개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항상 필리핀의 모든 것을 바라볼 때 답답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지갑까지 잃어버림으로써 난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난 우선 서비스센터에서 신고를 하기로했다. 그 친구를 어느정도 안정시키고 싶었다. 몇 마디로 문제상황을 말하고 만약 분실된 지갑을 발견하면 필리핀의 선교사님 거처라든가 한국 주소로 지갑을 보내달라고 말했다. 서비스 센타에서도 이러한 일에 대해 몹시 당황스러워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난 이곳에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나서 남은 시간 둘러보지 못한 곳을 둘러보았고 약속된 시간이 다 되어서 우린 지프니를 타고 다시 파가사 교회로 돌아왔다. 마닐라는 필리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써 필리핀을 대표할 만한 수도이다. 한국으로 말하면 서울과 같은 곳이다. 하지만 마닐라에 대한 나의 인상은 매연으로인한 매우 탁한 공기 , 약간은 살벌해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도시답지 않게 여기저기에 울고있는 닭들.... 수도처럼 느껴지지않았다. 한가지 특이할 만한 점은 이 곳 마닐라에서의 닭 울음 소리였다. 이 곳에서 닭 울음소리는 일로일로에서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답답하게 만들었던 일로일로에서의 닭울음 소리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비교적 시원한 , 귀익은 울음소리였다. 한국에서의 닭울음소리와 매우 흡사했다. 이곳에서 난 Time Keeper로써 지난 날들보다 더 적은 수면시간을 가졌지만 매우 깨운함을 느꼈다. 이 곳 닭들은 밤마다 나의 호흡주기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던 일로일로에서의 닭들과는 달리 호흡주기를 다시 정상패턴으로 돌려놓았다.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다. ^^
돌아와서 우리는 저녁식사를 했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기록했다.
2월11일- 필리핀에서 맞는 두 번째 주일날이다. 매일같이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리고 말씀가운데 우리의 삶을 점검하고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특별히 주일날이라는 느낌이 들지않았다. 이 곳 파가사 교회에서 아침 예배를 드렸는데 이 곳 성도들에게 우리팀은 준비한 월쉽과 드라마를 했고 이어서 파가사교회에서도 준비한 월쉽과 드라마를 했다. 그곳에서의 찬양은 너무나 뜨거웠고 우리들에게 보여준 공연은 예상밖으로 너무나 감동스러웠다. 그들이 한 드라마가운데 우리의 것과 비슷한 주제를 다룬 것이 있었는데 비록 말은 통하지않았지만 우리들은 하나님안에서 똑같은 자녀라는 동질성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예배에서 그곳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말씀은 사도행전2장42절에서 49절까지였다. 왜 그리스도인이 약하고 고통받는가를 주제로 초대교회와 지금 교회를 비교하시면서 설교하셨다.
예배후 파가사교회의 찬양팀들은 이어서 계속해서 찬양을 하기 시작했다. 본당엔 그곳의 찬양팀과 우리 일행들 뿐이었다. 몇 명의 성도들도 있었다. 처음 그곳 찬양팀 형제 싱어 한 명이 찬양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영어 찬양이었다. 하지만 익숙한 찬양이 나올 때 우리는 한국어로 그 찬양을 따라했고 율동을 할 수 있는 찬양이 나올 때 율동을 섞어가며 찬양을 했다. 그 싱어는 갑자기 월쉽이 아닌 막춤을 추기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령의 불이 붙었는지 여기에 뒤질새라 우리일행가운데 몇 명의 지체들도 둥글게 둘러썬 가운데서 이리저리 왔다가면서 막춤을 추기시작하는 것이다. 난 그냥 박수만 치고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이 내 마음 속에서 불현 듯 일어나면서 누군가에게 자꾸 떠밀리듯이 나도 막춤을 추려고 하는 것 이였다. 난 춤을 잘 추지못한다. 나의 강한 통제력으로 이런 맘을 계속 억제했다. 그 짧은 순간 엄청난 갈등이 날 순간적으로 힘들게 만들었다.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필리핀 찬양팀 싱어가 찬양의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시간이 흐르고 그도 지쳤는지 그 분위기는 식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너무나 순식간이 일이 일어났다. 그가 마이크를 놓자마자 난 바로 뛰쳐나가서 마이크를 잡았고 이어서 찬양을 하기시작했다. 나와 함께 두명의 지체들도 마이크를 잡았고 이 번에는 한국의 찬양팀이 찬양을 주도했다. 월쉽이 있는 찬양을 다했고 나도 찬양하면서 그 흥겨운 월쉽을 따라서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난 윌쉽이아니라 한국의 탈춤 비슷한 것을 추었던 것 같다. 분위기는 더욱더 뜨거워져갔고 약 2시간 가량 지난 후 불붙었던 찬양은 그제서야 식기 시작했다.
오늘 예배시간 한 지체가 군 입대 때문에 한국으로 들어갔다. 입대날짜가 2월12일이었다. 그는 필리핀에서 많은 곤욕을 치뤘는데 남성들의 3,40%가 게이(남성이지만 여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되거나 아니면 사회적인 영향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으로 인식하고있는 자)인 이곳에서 이들의 이목을 많이 집중시켰다. 게이들은 붉은 색이나 분홍색계통을 좋아한다. 게이들이 모여사는 곳의 집 전체를 온통 분홍색 페인트칠해놓은 곳도 봤다. 특히 첫 번째로 들렸던 교도소에서 이들은 군으로 곧 갈 이 친구의 머리색깔이 빨갛게 염색이 되어있었던 것을 보았고 즉각적으로 그 친구에게 한 명이 달려들어 포옹하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처음에 그들이 자신을 환영하는 줄 알고 더욱 세게 끌어안았는데 사건의 전말을 알고 나서 몹시 당황스러워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튼 11박12일 , 그친구에겐 10박11일인 이번 단기선교여행을 무사히 끝마치고 그는 고국으로 돌아갔다.
오후 예배는 필리핀에서 꽤 큰 교회에서 드렸다. Bread of life church라는 교회였는데 성도가 50000여명 정도 된다고 한다. 교회 건물도 엄청났다. 약 1000여명 석의 좌석이 비치되어있는 1층과 그리고 2층 발코니로 이뤄져있었는데 한 번의 예배때 약 200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났다.
왠만한 한국교회는 따라올 수 없을 만한 규모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교회가 필리핀에서 가장 큰 교회가 아니라 이보다 더 큰 교회도 있다고 한 점에서 난 놀라지않을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의 찬양과 예배에 사용된 시스템은 최신식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이제까지 필리핀의 작은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드렸던 찬양과 예배보다는 자유롭지 못했고 말씀 또한 잘 집중되지 않았다. 예배시간에 처음으로 졸음을 이기지 못했고 말씀도 잘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필리핀도 한국에서처럼 발렌타인데이 때문에 SM과 각종 market에서 초콜렛 판매에 열을 올리고있었고 청소년들도 이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보이고있었던 것 같다.
설교시간 발렌타인데이라는 말이 나왔었고 이것을 시작으로 예배시간 말씀의 주제는 사랑이었다. 사랑에 대한 몇 가지가 Projector(영사기)에 의해 스크린에 띄워졌는데 그 글들을 읽을 수 가있었다. 예배는 찬양과 함께 약 2시간 정도 행해졌었고 예배 후 일행들은 저마다 말씀이 좋았다고 하면서 매우 흡족해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난 별로 흡족하진 않았다. 너무나 기대했었기 때문일까? 문제는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을 다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파가사 교회로 다시돌아왔고 내일이면 이제 한국으로 가기 때문에 마지막 reflection 시간을 갖은 다음 하루를 마감했다. 필리핀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아쉬웠다. 여권을 잃어버리면 일주일정도 이곳에 더 있어야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는 내심 내 여권만 잃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고 잠깐동안 여권을 잃어버리도록 기도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다음 일정들을 따르도록 인도하셨다. 마지막 밤 , 가장 싫었던, 매연이 가득한 그곳 공기까지 좋게만 느껴졌고 이제는 듣기 어려운 이곳 닭울음소리가 너무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 여기저기 심겨져있던 야자 나무도....
2월12일 - 오늘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처음 이곳에 올때와는 다른 기분으로 우리는 필리핀 마닐라 국제 공항으로 향했다. 2시 비행기였다. 막상 한국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아쉬웠다. 하지만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샤워를 할 수 있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이렇게 아쉬움과 기대가 교차되고있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 흘러 난 지금 비행기안이다.
2시15분쯤 비행기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바로 이륙했다. 이곳 마닐라 공항에서 우리일행은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 몇 달 전에 필리핀에 온 몇몇 학생들과 같이 한국에 가게되었다. 그들이 아직 미성년자여 우리일행은 이들이 안전하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같이가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 초등학교 2학년인 유현상이라는 아이와 초등학교 4학년인 이무열이라는 아이가 나와같이가게되었는데 이들의 영어실력은 참 대단했던 것같다. 같이 얘기를 나누면서 왔는데 초등학교2학년인 유현상이라는 아이는 외국여행이 무려 10번이나 된다고 한다.
저녁시간이되어 비행기내 식사가 나왔다. 이번에도 처음 필리핀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chicken 요리를 먹었다. 능숙한 솜씨로 난 고추장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후 후추로 고기의 향을 더했다. 완벽했다.
기내식사를 마치고 몇몇 지체들과 원투원을 나누면서 잘 알지못했던 많은 지체들을 알아가는 시간을 갖었다. 그러면서 어느덧 한국 땅이 비춰졌다. 필리핀에서는 볼 수없었던 눈 덮인 산맥들이 징그러우리만큼 여기저기로 이어져있었고 그 광경은 정말 또 하나의 경이로움이었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아름다울수가..........
점점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었고 우리일행은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당연히 밖같은 겨울이었다. 겨울인데 여름 반바지를 입고있는이, 양말을 신지않고 슬리퍼를 끌고 배낭을 매고오는이 등등 너무나 가관이었다.
"한국이다!!" 누군가가 외쳤다. 그 순간 난 그 외침 속에 반감움보다는 아쉬움의 정서가 더 짙은 외침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들 아쉬워했다. 나도 그랬다.
옷을 바꿔입고 김포공항을 나설 때 난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김포공항에있는 화장실까지...
무척씻고싶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11박12동안 필리핀에서의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김포공항에서 우리는 관광버스를 타고 2월13일 새벽0시에 대구 시민회관에 도착했고 1시쯤 난 집에 도착했다.
고맙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시는 동안 필리핀의 상황과 그 곳에서의 기도제목들을 중간중간에 기록해놓았습니다.
동역자님들의 지속적인 기도로 그 곳 필리핀에서 더욱 더 많은 영혼들이 주님에게도 돌아올수 있기를 바랍니다 .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고 그 영혼들을 품는 동역자님들은 바로 세계를 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감사합니다. ------------2001년 2월24일
주의 능력으로 못할 것없는 자
문병산 올림